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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 혁


 




1930년대

 





31년
- 임응식 (부산예광구락부)

 



37년
- 정인성입회 (부산예광구락부)




1940년대

 


46년
- 부산광화회 창립 회장 임응식

 




47년
- 부산 예술 사진 연구회창립 회장 임응식



1950년대

 





52년
- 부산구포 사우회창립 회장 조벽하

 






59년
- 부산 모던 클럽창립 회장 김광석



1960년대

 







62년
- 한국 사진협회 경남지부 창립 지부장 김재문

 







63년
- 부산 지부장 김재문

 






63년~70년
- 부산지부장 김광석



1970년대

 






71년
- 부산지부장 최민식

 







72년
- 부산지부장 김광석

 







73년
- 부산지부장 김기표

 






74~83년
- 부산지부장 김광석



1980년대

 







84년
- 부산지부장 설찬수

 






87년
- 부산지부장 이준무



1990년대

 







90년
- 부산지부장 송봉운

 







93년
- 부산지회장 이종태

 






94~98년
- 부산지회장 박하원(`94.7.23)

 






99년~04년
- 부산지회장 김원갑



2000년대

 








05년
- 부산지회장 유영수

 






08년
- 부산지회장 최부길



2010년대

 







11년
- 부산지회장 김경환

 


14년 - 부산지회장 성상경

 

 


17년 - 부산지회장 이상일


 

본 자료는 부산사진사에서 발췌하였슴(1998년발간)


 2. 역 사


 

1. 일제침략하의 부산사진 사진이 부산에 도입된 시기는 명확히 말할 수 없으나 현재의 기록으로는 1917년 부산행정일정목(현 창선동 1가) 「백조그릴」자리에 토비사진관이 있었고, 부산남빈정이정목(현 남포동2가)의 팔교사진관, 그리고 같은 남포동의 산기사진기점, 현 부평동소재 오산사진기점 등이 이미 일본인들에 의해 사진업이 성행하고 있었다.

한편 사진연구단체로는 일본인들의 모임인 「부산여광구락부」가 있었고 여기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1931년에 임응식이 입회하였고, 이어서 1935년 일본 동경 사진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정인성이 1937년 이 클럽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예술사진계에서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한 평안도 출신인 조상범이 1933년 7월 7일 일본 동경사진학교 본과졸업(졸업증 제437호)과. 1938년 8월 27일
동경올리엔탈사진강습회 제38회 수료(수료증 제2501호)후 귀국 부산에 정착. 영업사진 및 창작예술사진에 전념하여 부산사진예술계에 동참하였다.

이 무렵 부산은 중요한 요새지로서 군기보호법에 의해 사진활동을 하려면 우선 요새사령부의 허가증이 있어야 했으며, 촬영이 끝나면 신속히 밀착인화와 함께 원판을 헌병대에 제출하여 검열을 필해야만 했던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사진활동은 무척 어려운 시대라 할 수 있다. 1941년부터는 군기보호법에 의한 촬영금지 지역 밖이라 할지라도 20미터이상 높은 위치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고, 또한 감광재료는 배급제로 되어 있었다.

이 시대의 사진작화풍은 일본사단의 흐름을 그대로 따랐던 것으로 소위 「예술사진」이라는 회화모방법으로 종전부터의 경
향을 따르는 양식과 1923년부터 대두한 「빛과 그 계조」라는 당시 일본사단에서는 새로운 작화양식이라 할 수 있는 즉 광선의 강약에 의해 생기는 농담의 톤을 사진표현의 제1로 삼는 자연주의사진, 등 두 가지의 사진형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2. 8·15해방과 혼란기
해방과 더불어 UN군이 상륙 진주하게 됨으로서 그들의 사진수요와 함께 시중의 사진수요량은 엄청나게 증가했고 미군에서 비공식으로 흘러나오는 사진재료가 범람하고, 궁핍했던 일제시대에 비해 풍성한 사진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46년 4월에 임응
식을 중심으로 「부산광화회」가 창립되었으며, 창립회원은 이금철, 김방우, 박인길, 고종일, 송량순, 김정석, 조풍필, 김오경, 박완서, 박기동, 조삼범, 박삼룡, 이병삼, 윤현성 등 15명이며 창립전은 1946년 8월 부산미국문화원에서 개최하였다.

부산광화회는 1947년 5월 3일 용두산공원에서 일반사진애호가를 위한 촬영대회를 개최하였던 바 백수십명이 모였으며 그들중 동호인의 요망에 따라 그
날 촬영대회 직후 창립총회를 거쳐 「부산사진연구회」를 탄생시켰다.

이것의 발전적인 확장으로 부산광화회는 자동적으로 해체되었으며 회장에 임응식, 부회장에 이금철, 총무에 고종일 등이 선출되었으며 1948년 1월에 제1회 전시회를 동년 12월에 제2회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8·15해방직후 정치적 혼란기와 함께 각종 문화예술단체가 난립하면서 그 양상은 좌·우익으로 갈라서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사진계에도 그 바람이 일어 서울의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사진동맹」과 「조광사진구락부」(45년
9월경성)가 좌익단체로 활약, 이에 반대 「조선사진예술연구회」(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 회장 이해선)가 우익활동을 하면서 그 대립은 점차 심화해 갔다.

좌익단체계열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사진운동을 적극 추진하면서 대구와 부산사단을 침식하기에 이르며, 한편 그들은 북쪽의 사진동맹체제의 이념적 사상으로 무장하여 하나의 정치도구로써 투쟁적 수단이였음을 그들 앞에 우익사진계열은 자유분방했을 뿐인 그 경험으로 그들에 대항할 아무런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투쟁력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무력했던 것이다.

그 거센 물결이 대구의 일파와 힘을 합쳐 부산에까지 밀어닥쳐 부산사진연구회의 부회장과 총무를 포섭하여 극렬하게 좌경을 강요해 왔으나 회장 임응식과
회원대다수가 완강히 그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대립투쟁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되고 「보도연맹」이 생기게 되어 좌익계사진인들은 대거 검거됨에 따라 더러는 월북하거나 잠적해 버렸고, 멋모르고 가담했던 사진인들이 전향해서 보도연맹에 가입함으로써 신변을 보호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불운한 고난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3. 사단의 통합시대

1)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작가협회(현 사단법인 한국사협과는 다르다)가 창립된 것은 1952년 12월 12일 정부가 피난지인 부산에 내려와 있을 때이다.
초대회장에 현일영, 부회장에 임응식, 최계복, 총무에 조명원, 간사에 정인성 등이 선임되었고, 창립전에 출품한 작
가는 서울측:현일영, 임석제, 지부원, 최창의, 조명원, 허승균, 김기순, 김한용, 부산측:임응식, 이삼, 김용진, 조상필, 나칠암, 박구, 박상문, 박기동, 송훈, 송미구, 정인성, 구포:이연광, 이희우, 삼천포:허종배 등이다.

작가협회는 창립후 몇가지 사진의 현대화를 위한 사안을 계획 추진했다.


① 사협이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 가입하는 문제,
②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사진부 신설,
③ 생활주의사진의 이념수립,
④ 사진의 대학교육실시,
⑤ 사진의 국제전 실시
  등이다.

문총이 창립된 것은 1947년인데 그때 사진단체가 이에 가입되어 있어야 했으나 유독 사진단체만은 소외된 상태였다.

문총에 가입된 것은 임시수도인 부산에 문총이 피난와 있었던 1953년초에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가입되어 회원단체일원으로 예술계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국전사진부 신설문제에 국전창설 다음해인 1953년부터 줄곳 사협은 문교부와 예술원에 건의하는 한편, 한국미술협회와 문총의 공동명의로 건의케 했다.

그러던 중 1961년 5·16군사구테타가 일어나 포고령 제5호에 의해 일반사회단체와 함께 강제해산을 당하고 동년 12월 17일 군사정부의 예술문화혁신정책에 따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군소사진단체가 규합하여 대표적 사진기구로서 「사단법인 한국사진협회」가 창립되었다.

동시에 「예총」에 구성회원단체로 등록 가입되었으며, 국전사진
부 신설문제를 새로 탄생한 사협이 계승적으로 추진하여 1964년 제13회 국전때 비로소 사진부가 추가신설되었다.

사협의 초대이사장에는 정희섭이 선출 취임했으며 지부설치규정에 의해 「사협 부산지부」가 설립되어 초대지부장에 김재문 선출, 회원 42명으로 창립되었다. (1962. 12. 17)

2) 한국사진협회 경남지부
1961년 5월 28일 전사진단체가 강제해산당한 후 한국사진작가협회 경남지부장 김광석과 영업사진단체장 김재문과 협의하에 1962년 12월 17일 「한국사진협회 경남지부」창립 총회를 개최하여 아래와 같이 임원을 선출하였다.


경남지부 임원명단(가나다순)

지부장

:

김재문·부지부장 김광석 임효도

간 사


:


김기순 김재홍 김정석 임학래·박래성·백선준 윤의도·이성희 장태원 주혁중

감 사


:


김홍철 김두순 오재정   (·표는 영업사진가)



 


3) 한국창작사진협회
1964년 8월 4일, 창협이 창립되었으며 대표위원에 임응식 선임.(회원 130여명) 사단법인 한국사진협회가 창립되면서 사단이 단일체제로 통합 되었으나 3년만에 「창협」이 생김으로써 실질적으로 한국사단은 2대 양맥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크게 따져서 「사협」측은 영업사진을 주업으로 하는 사진사출신의 집단이고 사진창작의 이념상의 문제로 구태의연한 살롱주의를 견지한다는 이념상의 대립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이에 반해 「창협」측은 순
수창작을 사진이념으로 하여 현시대의 사진사조인 「사실주의사진」의 실천이 지상과제라 주장하고 나온 것이다.

이 외에도 사소한 인맥관계도 작용하
여 「사협」과 「창협」은 서로 배타적인 대립관계로 존속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창협측이 열세에 있기는 했지만 지방에까지 파급되어 주요 도시에 「창협지부」가 설치되었다. 부산지부장에 박기동이 선임되었으며 회원 28명으로 조직되었다.

동년에 창립된 「부산사진동인회」(초대회장 성원경)회원이 부산지부 구성의 주축을 이루었다.

4) 한국창작사진협회 경남지부
1965년 한국사진협회 경남지부내의 한국사진작가협회계열 회원이 탈회하여 동년 1월 12일「한국창작사진협회」(창협)경남지부」를 설립하였다.


경남지부장 박기동 중앙대표위원 정인성
중앙위원 김기순 김석배 김시홍
회원 김두순 김복두 김종문 권상기 박문갑 박영제 이형탁 이호욱(이상 13명)



5) 「사협」과 「창협」의 통합
10년간 조직을 달리하여 반목 대립적인 관계로 사단을 분할 운영해 오던 「한국창작사진협회」(대표 임응식)가 「사단법인 한국사진협회」(이사장 김종양)에 흡수, 조건없이 사단규합에 합의함으로써 1971년 7월 27일 서울신문회관에서 단합대회를 성대히 마침으로써 명실공히 사단통합을 이루어 놓았다.

따라서 사협 부산지
부(지부장 김광석)도 동일한 뜻으로 흡수 통합을 보아 사단의 대통일이라는 역사를 남겼다.